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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 이그나이트
Volunteer Hall Of Fame

자원봉사자 명예의 전당

사회문제해결과 사회변화를 위해 힘써온 자원봉사자를 위한 공간입니다.
자원봉사자의 헌신에 경의를 표하며 당신의 이야기를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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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로운 자원봉사자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당신, 올해의 명예로운 자원봉사자를 소개합니다.

이경연

내일은 포근하고 맑겠습니다. "주먹을 꼭 쥐고 태어나지만 갈 때는 두 손을 펴고 간다. 이 세상에 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필요로 잠시 사용할 뿐. 내가 준 것은 잊고 작은 은혜도 갚는다."​2020년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는 코로나 팬데믹을 선언했다. 뉴스 는 전파를 타고 전 국민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시민들에게 배포할 면 마스크를 포장하던 이경연 씨는 지금이야말로 슬기로운 자원봉사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22년 동안 함께해온 동료들이 있 었다. 가족봉사단, 희망나눔터, 상담봉사단, 통합자원봉사지원단, 동 복지위원단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그들은 의기소침해 있었 다. 대면 봉사활동이 전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눈빛만 보고도 손발 을 맞추던그리운 사람들! 그들과 수해, 태풍, 폭설, 지진, 산불, 태안 기름유출과 세월호 사고 등 각종 재난재해 현장에 함께 있었다. 지금 에 와서 위험하다고, 숨어있을 수만은 없었다.  “넋 놓고 있을 순 없습니다.” 그의 전화로 자원봉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방역 복장을 하고 소 독장비까지 들쳐메니 슈퍼 히어로다웠다. 양주 지역 228개 봉사단체 와 연합해 밤낮없이 뛰어다녔다. 코로나 장기화로 지쳐있을 사회취 약계층으로 다가갔다. 사랑의 나눔키트와 희망의 감동보따리를 제작 해 안부를 확인했다. 예방접종센터를 찾아 의료진을 위로하고 시민 들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코로나가 현재 진행중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가 자원봉사를 하는 이유 는 안전하고 행복한,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땀범벅이었으나 흐뭇했던 지난 일을 돌아본다.  2002년이었다. 자원봉사센터에서 재난 대비 봉사단이 발족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겨울에는 이웃과 눈을 치우고, 장마철을 대비해 빗물 받이 청소를 해오던 그다. 주민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 각했다. 그러면서 예고 없이 일어나는 재난재해에 대처할 방법은 없 을까, 고민했다. 그러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재난 안전교육을 받 고, 이후 매년 전문교육을 받았다. 그의 역량은 통합자원봉사지원단 을 통해 훌륭히 발휘되었다.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자원봉사 수요를 파악하는 일, 피해지도를 만들어 봉사자를 배치하는 일, 여러 단체와 협력하는 일까지 체계적이고도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가 가는 곳에 는 언제나 사랑의 밥차가 따라다녔다.  그는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가족이야말로 봉사문화를 확산시키는 으뜸이며, 가장 든든한 조력자임을 느꼈다. 2005년 3월, 1기 아름 드리 가족봉사단 단장이 되었다. 그가 변함없이 해온 일은 다양하다. 노인과 장애인 시설을 방문해 수지침, 발맛사지, 레크리에이션, 건강 체조, 신나는 노래교실을 열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살펴왔다. 효도잔 치를 열고, 명절음식을 나누고, 김장을 나눴다. 후원과 기부는 그의 일상이었다. 지역축제가 열리면 홍보부스를 운영해 시민의 가족 봉 사 참여를 끌어내었다. 새로운 가족들과 환경살리기와 안녕캠페인을 진행하며 봉사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그의 가족봉사단에 대한 애정은 특별하다. 매년 센터에서 운영하는 봉사 단 발대식에 참석해 가족봉사단의 자세와 노하우를 전수한다. 현재 14기까지 각각 독립된 풀뿌리 봉사단체가 되도록 구심점 역할을 해 왔다. 청소년에 관심이 많은 그는 청소년 상담봉사자이기도 하다. 청소년 상담복지센터에서 월 2회 실시한 성교육과 학교폭력예방 교육만 해 도 270여 회가 넘는다. 그는 위기 청소년들의 건전한 가치관 형성에 정성을 쏟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우수 고교생들에게 장학금을 지 급하는 등 참어른의 모습을 보여왔다. 2010년부터 법무부 교육위원 으로 활동하며 청소년 보호관찰소 미성년자들과 성인 재소자들이 건 강한 사회인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2018년부터는 환경운 동에도 참여한다. 나무 심기, 다회용기 사용, 자원순환, 마켓 운영을 통해 기후 위기 극복에 앞장서 왔다. ​그는 실험적이고 창의적이다. 양주를 4권역으로 나눠 특화프로그램 을 운영하고 있다. 1권역에서는 홍복생태숲 살리기를, 2권역에서는 어르신 감성활동을, 3권역에서는 시민 생태공원을, 4권역에서는 옥 정 중앙공원에 자원봉사학교를 열어 청소년 자원봉사 학습장으로 운영한다. 그에게는 500여 평의 땅이 있다. 그는 이 땅을 기증했다. 직 접 감자와 고구마를 경작해서 지금까지 30회에 걸쳐 2,100박스를 소외계층에게 보냈다. 그에게 봉사와 나눔은 삶을 이끌어가는 철학 이었다. 그는 믿는다. 오늘 자신의 행동으로 내일은 포근하고 맑을 거라는 것을. 그가 매일 이른 아침 감자밭으로 나가는 이유다.​​​​"세상은 자원봉사자분들이 있어 살 만합니다. 긍정으로 감사함으로 아자!아자! 홧팅입니다."​

윤종순

용기있게 내미는 손​"인생은 후진이 없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자"  모든 움직임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비를 맞는 사람에게 내가 가진 우 산 하나를 건넬 때도 용기 없이는 전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칭송을 받을 만한 일에도 쉽게 손 내밀 수 없는데,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일 에 43년을 먼저 손 내밀어온 윤종순 씨가 있다.​1987년 논산, 부여에 집중호우가 내렸다. 무려 1,000여 명의 이재민 들은 가재도구 하나도 챙기지 못하고 간신히 몸만 빠져나왔다. 동성 초등학교에도 실의에 빠진 채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던 이재민이 있었다. 소식을 들은 윤종순 씨는 육군훈련소와 국군 논산병원의료팀 과 침수된 빨래를 수거해 세탁하고 임시진료소에서 진료를 돕는 등 40여 일간 봉사를 계속했다. 서해안에 기름유출 사고가 났을 때, 매 미, 곤파스, 볼라벤 등 사나운 태풍이 휩쓸고 갔을 때도 그는 이웃을 찾아가 따듯한 식사를 제공하고 무엇보다 시급한 복구활동에 힘을 보탰다. 대형 산불이 나고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났을 때도 마찬가지 였다. 어디든 재해 현장으로 달려가 급식봉사를 하고 구호품을 전달 하며 흙을 퍼내고 망가진 살림살이를 씻었다. 때로는 직접 구운 빵을 들고 봉사자들을 인솔해 갔다. 2021년 3월 논산시에는 겪은 적 없던 재해가 발생했다. 화학약품이 유출되었고 폭발로 화재가 발생했다. 이때도 그는 몸을 아끼지 않고 현장으로 가 방역요원과 대피한 주민, 복구활동을 하던 봉사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심리적 불안을 겪는 이들을 만나 심리지지 상담을 진행했다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홀몸노인, 장애인, 다문화가정, 조손가정 에는 쌀, 라면, 김장김치 등을 정기적으로 전달하고 희망풍차 프로그 램에 참여하여 아홉 세대와 결연을 맺는 등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있 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갔다. 지역 공모사업 지원에도 힘을 보태 봉사 관 시설과 밑반찬 봉사 등을 위해 필요한 저온 창고를 짓기까지 주도 적 역할을 했다. 홀로 생활하는 어른들을 위해 잔치를 열고 어르신들 을 모시고 안면도, 곡성, 음성, 함평, 태안 등 아름다운 관광지와 축 제 현장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이를 위해 지역 기관과 인사들의 도 움을 끌어내고 방문하는 지역의 자치단체와 봉사회 등과 유대관계를 맺는 등 서로 돕는 세상을 만들고자 힘썼다.다문화가정을 위해서는 전통 차례상 차리기를 시연하고 고추장, 된 장, 간장 등 전통장 만들기를 통해 이주여성들이 정서적 고립과 문화 적 차이를 줄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경주, 안동 하회마을, 거제 도 등을 함께 탐방하며 한국의 문화와 전통도 체험할 수 있게 했다. 대한민국의 구성원이 된 그들이 소외당하지 않고 자긍심을 지키며 살 수 있도록 다문화 봉사회를 조직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실크로드푸 드축제’ 등을 열어 각국의 전통음식을 나눌 수 있도록 했다. 무엇보 다 그는 이주여성들이 가진 능력을 개발하여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 록 적극적으로 지지해 왔다.코로나19로 사회적 위기가 왔을 때는 예방접종센터에서 안내를 하고마스크와 방호복, 장갑과 한라봉 등 지원품을 전달하는 일까지 그의 눈과 손은 언제나 어려운 이웃을 향했다. 논산딸기축제와 논산·강경 젓갈축제까지 지역을 살리는 일에도 적극적인 한편 라오스와 캄보디 아 오지마을에 화장실과 정수공급시설을 짓는 국제 봉사활동도 하였 다. 그가 이렇게 다양한 봉사활동을 오랫동안 이어올 수 있었던 데는 쉼 없이 공부하며 새로운 일에 도전해 미술치료사, 레크리에이션지도 자, 심리상담사 등의 자격을 취득했기 때문이다. 특히 심리지지 상담 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전문적인 활동으로 매월 조손가정을 방문해 어 려움을 겪는 조부모와 어린 학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의미 있 는 활동이다. 가진 것을 나누고 변함없이 이웃을 위해 마음을 쓰는 윤종순 씨 봉사의 시작은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용기 있는 행동에서 시작되었다."봉사도 행복도 습관이다. 오늘도 행복하자"​​​​​​

황우갑

황우갑 씨는 청년 시절부터 평택에서 야학 문화 활동에 힘썼다.1983년 고려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 그는 고향 평택에서 서울로 통학하며 송암야간학교와 송탄중앙야간학교에서 국어자원교사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문자 교육을 받지 못해 한글을 모르는 어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성인문해교실, 그는 28년이라는 긴 시간을 성인 문해교육을 위해 애쓰며 평택시민아카데미를 성인 초중등 학력 인정기관으로 발전시켰다.  덕분에 약 5백여 명의 학습자들이 한글을 깨우칠수 있었다. 문맹, 문자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문자를 익혀 활용하게 되는 것은 혁명과도 같은 일이다. 보지 못하던 것을 보고 알고 깨닫게 하였으니 그 일이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그것도 지금보다 몇 단계 위의 세상을 살 수 있게 하는 일이었다. 그는 성인.청소년야학교육 외에도 무료 청소년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방과 후 학습 지원과 급식 제공, 특기 적성 프로그램, 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하면서 장학금까지 지원하였다. 독서문화 증진을 위한 활동 ‘다사리 작은 도서관’운영은 아파트 밀집 지역 내에서 지역 시민과 청소년의 독서 증진을 위해 5천 권 이상의 장서를 보유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독서강좌를 열고 작은 도서관 활성화를 위한 네트워크 구축 사업과 지역 내 도서관 정책포럼을 수차례 개최하면서 시민문화생활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지역특성상 미군 기지 및 저소득층이 밀집된 지역에서는 교육 현실 개선과 청소년 교양 증진을 위한 ‘미래알 아카데미’를 개설하여 무료로 운영하였다.  ‘미래를 알자’라는 취지의 이 아카데미에서는 한국 사회 각 분야의 대표들을 초청하여 강연과 토론을 열었다. 이는 주말 가족대화 문화 확산에 큰 역할을 했다. 2015년 알파평화공원 공간 재생 정책 연구에서는 반환된 평택시 고덕면 율포리 소재 미국 탄약고 자리를 평화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는 ‘알파탄약고 연구회’를 지역 사회 각계 인사로 조직해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면서 2006년부터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당초 아파트 부지로 활용하려던 것을 공간을 보전하는 데 성공하였고, 이는 평생학습을통한 정책 제시로 지역 시민운동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민관 거버넌스의 새로운 사례가 되었다.그의 또 다른 활동으로 독립운동가 민세 안재홍 선생 기념사업회와 신간회 기념사업회 창립 운영을 빼놓을 수 없다.  평택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며 언론인, 역사학자로 커다란 족적을 남긴 민세 안재홍 선생을 기리는 사업회에서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면서 황우갑 씨는 민족과 나라사랑의 마음을 알리고 고취하는 것은 물론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높이는 일에도 기여를 했다.  역사를 제대로 알고 기억하는 일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데 초석이 되는 일이라고 믿은 까닭이다. 황우갑 씨의 40여 년에 이르는 봉사는 지역을 살리고 문화를 살리는 일, 즉 사람을살리는 일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영애

정영애 씨는 1968년부터 대구 YWCA 실무 간사로 시작해 양친회(현 플랜코리아) 한국지부 사회사업가로 활동하며 지역사회 내 이웃과의 소통에 앞장섰다. 우리나라 사회복지 영역을 넘어 자원봉사 영역까지 최일선에서 활동하는 우수한 리더 자원봉사자인 그는 50여 년이 넘는 동안장애인복지 발전과 사회적 약자 및 소외계층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실천하고 있는 자원봉사계의 산증인이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사)대구자원봉사포럼은 지역사회의 언론계, 학계, 자원봉사계, 재계에서 자원봉사에 관심이 높은 사람들이 모여 설립한 단체이다. 국내외 현안문제와 사회문제 등 다양한 주제로 전문가는 물론 자원봉사 관리자와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모여 대중 포럼, 전문가 포럼, 국제 포럼, 자원봉사 정책 세미나를 개최하여 자원봉사의 이슈와 정책을 연구하고 제언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사회적 해결 방안을 찾고 있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아동, 청소년들의 권익 보호와 복지증진을 위한 자원봉사활동에 적극적인 정영애 씨는 청소년들이 개구쟁이 학교, 농장 캠프, 독서지도, 방학교실, 환경과 자연캠프 등 학교별 클럽활동을 통해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사회참여를 촉진하여 활발한 자원봉사활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있다.  또한 청소년쉼터를 운영해 위기가정 청소년과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일정 기간 숙식 및 의료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여 각종 비행 유혹과 유해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애쓰고 있다. 동시에 전문상담과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여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의 자아정체감 확립과 심리적 안정 회복을 돕고 그들이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 복귀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 자원봉사계를 이끌기 위해 후학 양성에 앞장선 그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경북외국어대학교 헬스케어복지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자원봉사 확산과 발전을 위한 전문 인력 양성에 힘썼다. 자원봉사 현장에 대한 이론을 가르치고 현장의 생생한 경험을 전달하는 강의를 통해 예비사회복지사와 자원봉사자의 자질을 향상시키고 지역사회에서 자원봉사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도 앞장섰다. 무엇보다 자원봉사자와 사회적 약자, 소외된 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많은 사람들의 인권 향상에 앞장섰고 모든 활동에 있어 참여와 실천적 자세로 모범을 보이는 그의 이웃사랑은 자원봉사자 리더로서 박수받을 만하다. 모르는 것을 아는 기쁨은 크다. 그러나 아는 것을 실천하는 기쁨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앎을 실천해 가는 정영애 씨는 세상을 밝게 비추는 빛과 같은 존재이기에 칭찬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

이유근

‘나의 삶과 나의 의술을 순수하고 경건하게 유지할 것이다.’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일생 지키며 살고 있는 이유근 씨에게는 직함이 많다. 아라요양병원 원장을 포함해 7개나 된다. 그만큼 책임지고 해야 할 일이 많다는 뜻이겠다.  직함의 면면을 살펴보면 부와 명예를 위한 일이기보다는 제주시민을 위한 일임을 알게 된다. 그의 봉사는 시작부터 남달랐다. 1959년 까까머리 고등학교 시절부터 도서실 봉사를 했다는 그는 졸업식에서 공로표창을 받았다. 이후 그가 쌓아올린 봉사시간이 62년이라고 하니 일생 봉사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지역사회를 복지공동체로 만드는 일은 그의 큰 꿈이었다. 2000년 제주시자원봉사단체협의회가 결성되고 초대회장을 맡은 그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보육원과 소년소녀가장 돕기, 한센복지협회, 새생명후원회, 외국인근로자 무료진료소개원 등에 적극 동참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장애인관광도우미사업, 취약계층 주거환경개선사업, 우리 바다 살리기 운동, 휴먼르네상스아카데미 등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을 정도다.  모두 지역민을 위한 복지문화 사업이었다. 그는 제주의 풀뿌리 민간자원봉사자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안녕한 사회를 만든다고 말한다. 그는 그 토대를 다지는 일에 일생을 헌신한 사람이었다. 열정은 멈추지 않아서, 앞장서고 있는 여러 활동에 여전히 동참자이며 든든한 지원자인 그는 정말 멋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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